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세월호 참사(慘事)에 대해 사과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3일 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그동안 쌓여온 모든 적폐를 다 도려내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 대통령은 곧바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너무도 한스럽다"며 "내각 전체가 '국가 개조(改造)'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이고 철저한 국민 안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대형 재난에 종합 대처하기 위해 총리실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 사과와 국가안전처 신설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안전해지겠구나'라고 느끼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조직이나 장비와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다. 조직이라면 이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제일 중요시하겠다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했다. 우리는 세계 수준의 잠수·구조 장비와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객선 안전을 위한 규정도 충분히 있다. 국가 재난 대응 매뉴얼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
이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핵심 문제다. 세월호 사태에선 이 조직과 장비, 인력, 매뉴얼이 다 따로 놀았다. 정부 부처부터 일선 기관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책임질 일을 일단 피해가고 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민간에선 어떤 정부 조직, 어떤 규정도 기발한 방식으로 빠져나가면서 비리를 저지르고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공무원들은 그런 세력들과 공생(共生) 관계, 이권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
이 썩은 소프트웨어를 혁신하는 것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 개조'의 핵심이 돼야 한다.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고, 공무원의 유관 업체 재취업을 막고, 해운업계 비리 근절 방안을 내놓고, 새 안전 대책과 매뉴얼을 정비하는 것도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 안전 시스템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가 통째로 바뀌지 않는 한 지금 내놓는 대책들 역시 결국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지금 그런 눈으로 대통령 사과와 국가안전처 신설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엔 '이번만은 제발 제대로 바꿔달라'는 간절한 애원도 담겨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