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재난이나 국가적 현안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때 관료들이 대응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경향이 있다. 우선 여론의 아우성과 언론의 뭇매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불가피한 최소한으로 관리·감독 책임을 진다. 그리고 온갖 대책을 쏟아낸다. 그 다음에는 허점을 메워야 한다며 조직과 규제 신설, 예산 증액을 요구한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공직자들을 유관 단체에 취업시킨다. 정부 수립 이후 계속돼 왔고, 최근 더 노골화하고 있는 관료주의 관행의 일부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안전처’ 신설 발표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컨트롤 타워 부재(不在), 한심한 초기 대응력 등을 지적하면서 그런 구상을 밝혔다. 대책본부가 10개나 만들어졌지만 어느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다 인명(人命)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미숙한 대응 탓에 놓쳐버린 안전행정부나 해양수산부, 해경 등의 실상을 보면 언젠가 그런 시스템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병의 원인도 진단하지 않고 수술부터 하겠다는 식이다. 시시각각 새로운 사실들이 나오고 있다. 관료들과 업계의 유착 의혹도 눈덩이다. 해수부와 해경의 존재 이유 자체를 위협할 지경이다. 지금 시급한 일은 얽히고설킨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그 책임(責任) 소재와 비리 사슬을 철저히 찾아내는 일이다. 그 다음에 예외없이 법률적·행정적·정치적 책임까지 엄정히 물어야 한다.
국가안전처 신설이 화급하지 않다는 사실은 박 대통령의 ‘안전한 사회’ 공약에 따라 이뤄진 시스템 개편이 지난 2월부터 겨우 시행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사고 이후 2004년 소방방재청이 재난 관리 전담기구로 신설됐다. 박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자연재해의 경우엔 소방방재청으로, 인적·사회적 재난은 안행부로 관할을 이원화했다. 이제 다시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단순히 조직만 합친다고 될 일이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의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긴급 신고전화 일원화, 통신 주파수와 관할 기관 통합 등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6·4 선거를 앞두고 민심 수습을 위한 ‘정치적 시나리오’도 중요할지 모르나 이런 기본을 무시한 꼼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