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이 11일 오전 소위 구원파 본산인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 또 들어갔다.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씨와 그의 도피를 돕는 구원파 신도들을
체포하고 유씨 도주에 관한 증거 자료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금수원 진입은 지난달 21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엔 경찰 6000명이 동원됐다.
검찰은 앞서 10일 오후엔 경찰·해경은 물론, 군·안전행정부·관세청 관계자까지 불러 대책회의를 열었다. 유씨 밀항을 막기 위해 해군 함정까지
동원하기로 했다.
검경이 용의자 한 명을 붙잡기 위해 수천 명을 동원해 수색을 벌이는 일은 여태까지 없던 일이다. 전국 통반장
조직에 유씨에 대한 신고를 독려하기로 한 것도 이례적이다. 군 병력까지 동원돼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공조직(公組織)을 사실상 전부 가동했다고 봐야 한다.
정부 기관들의 이런 움직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유 전 회장을) 못 잡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까지의 검거 방식을 재점검하고 다른 추가적인 방법은 없는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서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질책한 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에도 "(유씨를) 신속하게 검거해 진상과 의혹을
밝히라"고 독려했다.
박 대통령의 질책이 있자 인천지검은 이날 밤 11시 15분 부랴부랴 인천지법에 금수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그동안 금수원이 너무 넓어 유씨가 그 안에서만 숨어 있어도 찾기 어렵다며 재진입을 부담스럽게 여겨왔다. 경찰 역시 9일 열린
자체 회의에서 금수원에 재진입하면 신도들과 충돌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며 안 들어가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경이 11일 금수원에 진입하고도 유씨와 그의 장남 대균씨, 이들 부자(父子) 도피 지원을 지휘한 혐의를 받는 여신도 2명 등 핵심 인물을
검거하지 못했다. 철저한 사전 대비를 하고 들어가도 체포를 장담할 수 없는 판에 대통령 질책을 받고 황급히 들어갔으니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이제라도 유씨를 체포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게 아니라 대통령이 범인 검거를 거듭 촉구했는데도 성과를 못 낸다면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검찰은 물론 청와대에까지 그 부담이 돌아가게 될 수 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공조직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제 발로 나온 사람 외에는 단 한 명도 더 구출해내지 못했고 안전행정부는 실종자·사망자 숫자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는
청해진해운이 제멋대로 여객선 구조를 개조해 위험을 안고 운항하고 있는데도 못 본 척 눈을 감았다. 이제 범죄 용의자를 잡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고 말았다. 국민은 이 나라 공조직과 공직자들의 무능(無能)의 끝이 어디인지 답답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