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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단 한 번의 전쟁도 질 수 없는 나라-이스라엘과 한국의 차이

중국이 싫어하니 미국과 협력하는 미사일방어망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야당이 있는 나라이다

유태인은 머리는 좋지만 尙武(상무)정신은 약했다. 유럽에서 수시로 집단 학살당한 이유도 자위력이 약했던 점과 관계 있다. 유태인이 만든 이스라엘은 상무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사는 유태인과 다른 나라에 사는 유태인은 다르다고 한다. 이스라엘 유태인은 국가를 만들고 여러 차례 전쟁을 통하여 이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유태인들의 나쁜 민족성을 극복하여 새로운 사람들로 거듭 태어났다는 것이다. 머리는 좋지만 尙武정신이 약하여 유럽에서 동네북처럼 핍박을 당하던 민족이 일단 국가를 세우고 군대를 건설하니 독한 사람들로 변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 우리가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安保(안보)는 절대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이스라엘의 맹세이다. 이런 결연한 다짐은 이스라엘의 보통사람들조차 영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한국인 또한 조선조 이후 文民(문민)전통이 강하고 尙武정신이 약하였다. 그 결과는 國力의 쇠퇴와 식민지화였다. 1948년 국민국가를 만들고 國軍(국군)을 건설한 이후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용맹한 국가로 변해갔다. 李承晩(이승만)-朴正熙(박정희)-全斗煥(전두환)-盧泰愚(노태우)로 이어지는 약 40년간의 대한민국 역사는 군사문화가 지배적인 역할을 한, 民族史上(민족사상) 예외의 시기였다. 1993년 이후 정권이 文民 지배로 돌아가자 예외의 시대는 끝나고 正常(정상)의 시대로 돌아갔다. 문제는 민족사의 正常이란 것이 국방을 외국에 맡겨놓고 政爭(정쟁)에 몰입하는 변태적 권력투쟁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군대와 민간 부분이 一體化(일체화)되어 있는 반면에 한국은 군대가 민간부분으로부터 소외되고 정치인들, 특히 親北(친북)좌경 정치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 군사적 전통이 취약한 국군 지휘부는 좌경화된 문민세력에 굴종적 모습을 보이면서 自主(자주)국방 의지와 전쟁의지를 스스로 약화시켰다. 국민들도 미국에 安保를 맡기고 웰빙 생활에 탐닉하는 모습이다.
반면 북한정권은 경제적, 외교적 위기 속에서도 이스라엘처럼 자주국방 노선을 견지하면서 핵무기를 개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 한국은 이스라엘과 반대의 길을 걷는 나라처럼 보인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차이는 자주국방 의지의 有無(유무)이다. 필자는 그 원인을 여러 모로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이러하였다. "국가 지도부의 死生觀(사생관)과 청렴성이 관건이다." 私生活(사생활)이 깨끗한 지도자만이 위기 때 목숨을 걸고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은 생활이 복잡하면 복잡하게 생각한다. 국가 지도층의 소박한 삶이 중요한 것은 그래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깨끗한 만큼만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 설거지하는 74세의 여성 총리 골다 메이어


제4차 中東(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을 이끈 총리는 골다 메이어였다. 70代의 여성총리는 1898년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190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모리스 마이어선과 결혼, 1921년에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갔다. 잠시 키부츠 생활을 한 부부는 텔아비브로 옮겼다. 메이어는 시오니즘 조직에 가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1948년 미국에 가서 모금 활동을 성공적으로 벌였다. 메이어는 그해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의 서명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스라엘 建國(건국)의 아버지인 밴구리온 총리는 골다 메이어를 노동부 장관에 이어 외무장관으로 임명하였다. 1969년 에쉬콜 총리가 急死(급사)한 뒤 집권 노동당은 그를 총리로 선출하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 팔레스타인 게릴라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급습, 11명의 선수와 코치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메이어 총리는 군인과 정보기관원으로 암살단을 조직, 테러 관련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했다. 이 암살작전은 20년간 계속되었다.
1973년 10월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침공할 것이란 사실을 불과 8시간 전에 알았다. 군부는 先制(선제)공격을 건의하였다. 미국은 선제공격을 하면 미국 여론의 악화로 원조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얻어맞는 쪽을 선택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기습을 허용한 데 대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1974년에 사임하였다. 후임은 라빈 전 참모총장이었다.

이탈리아의 인터뷰 전문 여기자인 올리아나 팔라치는 1972년 11월 골다 메이어 총리를 인터뷰하였다. 팔라치는 두 번 인터뷰하여야 했다. 첫 번째 인터뷰를 한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호텔에 투숙하였는데, 누군가가 녹음 테이프를 훔쳐갔던 것이다(팔라치는 리비아 정보기관 요원들을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이 소식을 듣자 인터뷰를 다시 하자고 연락을 취하였다.

일찍 남편과 이혼한 메이어 총리는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빌라 앞에 경호원이 서 있을 뿐이었다. 메이어 총리는 낮에 소녀를 불러 청소를 시킬 뿐 요리도 직접 하였다. 팔라치와의 인터뷰 전날 메이어 총리는 손님들을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였다. 회식은 새벽 2시에 끝났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총리는 새벽 3시30분까지 설거지를 하였다. 3시간 남짓 잠을 잔 74세의 할머니 총리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집무를 시작하였다. 팔라치가 오전 10시에 메이어를 만나니 피로해 보였다고 한다. “인터뷰를 연기해도 좋습니다”라고 했지만 메이어는 “이렇게 멀리 오셨잖아요. 테이프를 도둑 맞고...”라고 오히려 위로했다.

팔라치 기자는 긴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지기 직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메이어 여사님, 죽음을 어떻게 봅니까?
“저의 한 가지 걱정은 너무 오래 사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죄도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계단을 뛰어서 오를 수 없다든지, 점프를 할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어요. 문제는 정신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너무 일찍 죽은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듯이 너무 늦게 죽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좋던 知性(지성)이 망가져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치욕입니다. 그런 치욕이 나에게 생기지 않기를 바라죠. 내 정신이 말똥한 상태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한 가지 걱정은 너무 오래 사는 것입니다.”

골다 메이어 총리의 소박한 삶은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인과 軍人은 우리 기준으로는 거의가 가난뱅이이다. 돈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法治(법치)가 公職者(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제한다. 라빈 총리는 駐美(주미)대사 시절 미국에 개설하였던 은행계좌를 귀국할 때 폐쇄하지 않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사임하여야 했다. 이스라엘 지도부가 용감한 것은 청렴한 덕분이다. 지도자는 깨끗한 만큼만 용감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 수상과 대한민국 대통령의 차이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은 2009년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란의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계획 관련 문서를 들고 나와 연설하였다. 이런 요지의 말도 하였다.
"어제 이 演壇(연단)에서 유태인 학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항의하는 의미로서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사람과 연설도중 퇴장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여러분들은 도덕적 분별력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였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명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자에게 귀를 빌려주신 분들에게 우리 국민들, 유태인들, 그리고 모든 곳의 교양 있는 분들 입장에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부끄러움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
("Yesterday, the man who calls the Holocaust a lie spoke from this podium. To those who refused to come and to those who left in protest, I commend you. You stood up for moral clarity, and you brought honor to your countries.
"But to those who gave this Holocaust denier a hearing, I say on behalf of my people, the Jewish people, and decent people everywhere, have you no shame? Have you no decency?")
그 전날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韓國戰(한국전) 때 유엔군이 우리를 구해준 데 감사하였으나 북한군이 南侵(남침)하여 일어난 전쟁이란 사실을 누락시켰다. 善(선)만 이야기하고 惡(악)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하면 결국 善이 죽는다.


이스라엘軍은 독창적인 조직과 交戰(교전)수칙 및 전쟁敎理(교리)를 발전시켰다. "이스라엘은 단 한번의 전쟁도 질 수 없다"는 게 기본이다.


이스라엘군이 장병들에게 가르치는 交戰수칙(Code of Conduct)은 다음과 같다.

1. 군사 목표에 대하여서만 군사적 행동을 한다.
2. 군사력의 사용은 비례적으로 한다.
3. 이스라엘 軍이 허용한 무기만 사용해야 한다.
4. 항복한 敵(적)에겐 공격하지 않는다.
5. 훈련을 받은 사람만 포로를 신문할 수 있다.
6. 병사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체포된 사람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7. 敵軍(적군)에게도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
8. 약탈은 완전히 불법이므로 절대로 금지한다.
9. 종교적, 문화적 유적지와 문화재를 존중해야 한다.
10. 국제구호활동가들의 재산과 차량은 보호해야 한다.
11. 이 수칙을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는 보고해야 한다.

이스라엘 국방군의 전쟁 敎理(Doctrine)는 이렇다.

1. 이스라엘은 단 한 번의 전쟁도 질 수 없다.
2. 전략적 단계에선 방어적으로 임한다. 우리는 영토적 야심이 없다.
3. 정치적 수단과 신뢰할 수 있는 억제 태세를 유지, 전쟁을 회피한다.
4. 擴戰(확전)을 예방한다.
5. 전쟁의 결과를 신속하게, 결정적으로 확정짓는다.
6. 테러와 싸운다.
7. 戰死傷者(전사상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한국도 단 한 번의 전쟁도 질 수 없는 나라이다. 북한정권의 무자비성, 공산주의의 非(비)인간성, 그들이 가진 核 및 생화학 무기의 파괴력을 고려하면 한국은 단 하나의 실점도 허용할 수 없는 나라이지만, 중국이 싫어하니 미국과 협력하는 미사일방어망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야당이 있는 나라이다. 實戰(실전)배치 단계에 있는 北의 核미사일을 앞에 두고도 "우리가 살아야 합니까, 죽어야 합니까"를 중국에 묻고 있는 격이다. 이런 집단이 국가 지도부를 이루고 있는 한국은 생존 자체가 기적이고 요행이다.

 

조갑제 닷컴 조갑제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