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 발행되는 統一日報(1959년 창간, www.onekoreanews.net)만이 재일동포들의 역사관과 안보관, 그리고 한일관계를 성찰하기 위한 建國節 사설을 게재하였다. 全文을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원문을 최대한 살렸으나, 일부는 읽기 쉽게 표현을 약간 바꾸었다.
'한반도의 비정상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제66주년 건국절을 맞이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국제환경을 살펴보며 建國革命의 완결을 향한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자 한다.
지금,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가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식민지 35년의 두 배의 세월이 흘렀지만, 해방과 동시에 分斷된 상황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한일관계도 지금 같은 자유민주주의 陣營이라는 의식보다, 편협한 경쟁과 상호 견제의식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식민지 爭奪戰의 戰場이었던 한반도는, 해방된 후에도 6.25전쟁이라는 國際戰의 戰場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한반도 주변은 언제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유엔개발기구가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에서 세계15위로 전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사회적 혼돈과 갈등 속에 총체적인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다. 서울올림픽 후 계속된 좌경화와 포퓰리즘으로 인해, 국가적 성장잠재력은 거의 소진되었다. 북한의 대남공작에 內應하는 거대한 從北 세력이 출현하고, 내란음모세력은 국회에까지 교두보를 만들었다.
스탈린의 위성국가로서 사회주의가 이식됐던 북한은 봉건왕조로 돌아갔다. 核미사일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야만적 폭압체제가 3代를 세습하면서 주민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퇴화시켰다. 분단 70년은 같은 민족의 유전자까지 변형시켰다. 신체왜소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한반도의 분단은 역사의 필연이었던가? 역사에 因果關係는 있어도 필연이란 없다. 오늘날의 남북한의 차이를 만든 것은 선택이었다.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되어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질서를 되돌아 보면, 스탈린은 전쟁 이후를 생각하면서 전쟁을 했고,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에만 집중했으며, 일본은 전쟁의 시작과 끝내기가 지리멸렬이었다. 이것이 세계대전 후의 세계-동아시아 질서를 만들었다.
한일 관계는 국교정상화 50년이 되어가지만, 대다수의 양국국민들이 서로 상대를 잘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를 客觀化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自國도 잘 모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1945년 8월15일은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군국주의에서 해방된 날이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以前으로의 복구가 목표였는데 비해, 한국인들에겐 돌아갈 ‘以前’이 없었다. 李承晩의 대한민국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건국혁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아시아대륙 유일의 자유민주주의 신생국인 대한민국 말살을 목표로 김일성과 모택동을 사주하여 6.25전쟁을 일으켰다. 그때 트루먼이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한국국민의 자유를 구했다. 트루먼은 敵軍 포로의 인권을 위해 自國 병사들을 희생시킨 偉人이다.
모택동의 한반도 침략은, 일본이 식민지 통치기에 건설했던 인프라를 거의 잿더미로 만들었다.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以前의 상태로 돌아갔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개인으로서 가치관을 공유한 적이 있을지 몰라도, 국가적으로 양국이 價値觀을 공유해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일본은 분단된 한반도의 자유 민주주의 등엔 관심이 적었고,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이용해 왔다. 귀찮은 존재인 재일한국(조선)인 93,000여명을 스탈린主義의 생지옥으로 송환했다. 근년 ‘가치관 외교’를 강조해 온 일본정부(아베 政權)가, 돌연 김정은 체제에 접근하고 있는 행동에서도 일본 외교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東西냉전을 싸웠다.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韓美同盟은 더욱 굳건하게 발전되었으나, 미국의 對中戰略의 전환으로 인해 東아시아의 反共투쟁-理念戰爭은 혼란을 겪게 된다. 대한민국은 좌경화도 이 이념전쟁의 혼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다.
한일관계의 전략적 갈등의 근원은, 중국-중국공산당이다. 일부 일본인들은, 한국이 결국은 中國에 예속될 것이라는 說을 국제사회, 특히 미국사회에 전파(고자질)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中共과의 관계 발전에 적극적이어서, 韓美日 反共동맹을 깨뜨리는데 앞장 선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닉슨 쇼크에 놀라, 대만과 斷交하고 중공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지지했다. 중국에 막대한 경제협력을 한 것도 일본이다. 한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일본보다 20년 뒤이다.
동서냉전은 사실상 世界大戰이었다. 따라서 동서냉전 以前과 동서냉전 以後의 세계는 전혀 달라졌다. 유럽은 동서냉전이라는 역사의 40년간을 유용하게 활용하여 정치적, 경제적 통합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동서 냉전기에 동아시아에서는 공산주의와 투쟁 전선이 애매해졌다. 미국이 유럽에서의 냉전에서 이기기 위해 東아시아를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키신저의 對中 전략은 소련과 중국을 갈라놓아 유럽으로 가해지는 소련의 압력을 덜고, 소련의 패망을 촉진시켰을지 모르지만,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선,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스탈린을 도왔듯이, 닉슨은 모택동의 중국을 도운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이 동서냉전 후에 갈등이 증폭되는 전략적 배경이며, 역사의 교훈이다.
결국, 유럽은 동서 냉전을 통해서 동유럽까지 사회주의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지만, 아시아는 반대로 중국의 힘이 증대되어 한국과 일본을 압박하게 되었다.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정책이 초래한 아이러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중국(중국공산당)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주변국과의 우호관계를 바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을 가져온 가치와 체제, 생활방식을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북한해방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모든 갈등의 근원은 분단에서 기인한다. 1世紀 이상 노예상태인 북한동포를 해방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은 기대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8월7일, “통일이 한반도의 비정상을 극복하는 궁극의 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북한 해방을 견제, 방해하는 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늘려야 하며, 필요하면 독자적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 북한 해방을 돕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우방이다. 북한 해방을 방해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敵이고, 自由의 敵이다.
역사상, 모든 고난과 위기는 동시에 찬스였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비전과 각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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