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띠로 사방 떡칠해 놓고, 마르고 닳도록 [죽음의 행진] 하자고?
죽음과 부활
새민련(새정치민주연합)이 죽어가고 있다.
죽을 수 밖에 없다.
잡귀와 결탁하여 가련한 희생자를 착취했기 때문이다.
무릇 잡귀와 결탁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패망할 수 밖에 없으며,
가련한 희생자를 착취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멸망하기에 족한 법이다.
그런데 새민련은 이 두 가지 흉측한 짓을 모두 저질렀다.
그래서 죽는다.
1. 맥베스
맥베스는 잡귀와 결탁했다가 죽었다.
잡귀가 맥베스를 유혹했다.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
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너는 틀림없이 성공해!
내가 보장하지!”
그런데 진압군 병사들이 온 몸에 나뭇가지를 꼽고 마치 숲과 같은 모습이 되어 움직였다.
처음부터 잡귀의 장난질이었던 것이다.
서울 시청 앞의 흉물스럽게 변한,
거꾸로 선 노란색 먼지떨이….
길거리 여기 저기에 걸린 빛 바랜 노란 띠를,
새 노란 띠로 바꾸어 다는 기괴한 모습들…
이게 다 무엇인가?
띠,
즉 천 조각은 원래부터
(좋은 말로)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의 상징이며,
(나쁜 말로) [잡귀를 부르는] 귀빙(鬼憑) 아이콘이다.
서낭당 깃발(룽타, 서낭당 깃발의 원조인 티벳 깃발)과 같이,
다섯 색을 맞추어 주어야 잡귀가 올 확률이 낮아지는 한편,
좋은 혼이 찾아 올 확률이 높아진다.
▲ 우리 서낭당 깃발의 원형인 룽타, 티벳 및 히말라야 지방에서는 일상화되어 있다.
그런데 노란색 일색이라고?
룽타에서 노란색은 천마(天馬, 페가수스)의 상징이다.
지상의 존재가 하늘로 승천하기 위한 도구이다.
노란색이 천마가 될 수 있는 까닭은,
군청-초록-빨강-하양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나머지 네 가지 색깔이 받쳐 주지 않는 노란 띠는,
영혼을 태우고 오르는 [상승마](上乘馬, 천마)가 아니라,
잡귀가 타고 내리는 [하강마](下降馬)일 뿐이다.
▲ 티벳의 수직 룽타. 노란색 깃발에는 기도문이 인쇄되어있다.
기도문 중앙의 그림은 천마(天馬)이다.
온 나라를 노란 띠로 떡칠한 정치세력들….
이들이 노린 것은 무엇인가?
“잡귀의 힘을 빌어,
슬픔을 증폭시키고,
증폭된 슬픔을 착취해서,
표를 만들자!”
이것이,
이 상스러운 정치 투기꾼들의 노림수였던 것 아닌가!
이제 이들은 노란 띠를 걷지도 못 한다.
예를 들어 박원순은 서울 시청앞 건물에
“마지막 한 분이 살아 돌아 오실 때까지..”
어짜구 씨부린 새빨간 거짓을 걸어 놨다.
숨진 사람이 어떻게 돌아 온다는 말인가?
결국 이런 전략 아닌가?
“대한민국이 망할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잡귀의 힘을 빌어
상갓집을 유지하겠다.
그 상갓집 분위기의 힘으로
선거에서 이기겠다”
생명이 얼마나 모질고 천연덕스럽고 악착 같은 흐름인지,
전혀 알지 못 하는,
무식한 전략이다.
생명의 몸부림과 용트림은,
잡귀를 쓸어 버리고
상갓집 분위기를 쓸어 버리는 법이다.
오죽 하면 서양에,
“장례식 잔치”(funeral feast)가 있을까?
장례식 마치고 돌아와서 친지들이 상주와 함께 실컷 먹고 마시는 자리이다.
우리에겐,
2박 3일 장례 과정 자체가 밤낮없이 먹고 마시는 화투판이었다.
심지어 상여를 메고 나가면,
상주와 상여꾼들이,
마치 함 들어갈 때 발걸음마다 돈을 놓듯이,
걸음 흥정을 했다.
상여 앞에 매인 줄에 돈을 꽂으면,
구슬픈 상여노래를 부르며 논 한 배미를 나아간다.
(묘 자리는 산에 있기에 논 두렁, 밭 두렁을 상여가 지나야 하기 일쑤다.)
마지막 하관 때에도,
관을 내리는 일꾼들을 위해 돈을 깔아야 하기 십상이다.
그렇다.
생명은 상스럽도록 천연덕스럽게 꾸역꾸역 흘러가는 강물이다.
삶의 이치가 이런데,
새민련은,
“노란 띠로 온 사방을 떡칠해 놓고,
마르고 닳도록 [죽음의 행진]을 하면,
선거에 유리하다”라고 판단했다.
이는 잡귀의 꼬임에 홀딱 빠진,
치명적 실책이다.
그래서 새민련은 빼도 박도 못 하고 죽는다.
2. 아가멤논
새민련의 치명적 실책은 잡귀와 블루스를 당긴 것 뿐 아니다.
가련한 희생자를 착취했다.
애꿎게 숨진 어린 넋들을 이용했다.
가련한 어린 넋을 이용하려는 자는 매우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아가멤논이 그렇다.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군의 총 지휘자가 된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자신의 리더십을 확고하게 굳히기 위해,
즉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딸(이피게니아)를 죽여서 그 넋을 제물로 이용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전쟁에서 돌아 온 아가멤논을 마누라가 암살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아들이 죽였다.
비극은 계속된다.
아들은 평생,
“어머니를 죽였다”라는 트라우마 시달렸으며,
이 왕조는 손자 때 절단났다.
오직 한 명의 어린 넋을,
착취하려 들었던 아가멤논의 운명이 이 정도로 비참했다.
하물며,
진도 앞 푸른 물결에 잠진 수 백 어린 넋들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착취하려 시도하고 있는 새민련에 대해서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직 한 문장으로 족하다.
“새민련은 죽는다.”
3. 죽음과 부활
그러나 죽음은 곧 부활의 시작이다.
새민련이 죽는다고 야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야권은 더 강하게 부활한다.
[노란 띠]로 이루어진 외통수에 제대로 걸려서
제대로 죽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제대로 부활한다.
특히 새누리와 박근혜 정부에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야권은 잘 부활할 수 있다.
제대로 잘 죽기만 한다면….
훌륭한 죽음이 훌륭한 부활을 만드는 법이다.
그런데, 새누리와 박근혜 정부의 한계란 무엇인가?
만약 새누리와 박근혜 정부가,
1950년대, 1960년대 일본 자민련처럼
절대적 지배력을 갖춘 사실상의 [1당 지배체제]를 만들고자 한다면,
새민련을 그 뿌리까지 가루로 뭉개 버리는 섬멸전(annihilation warfare)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섬멸전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으려면,
엄청난 정치철학적 통찰,
엄청난 정치공학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새누리와 박근혜 정부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같은 통찰과 에너지가 없다.
만약 그런 통찰과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있었다면,
문창극 사태 때,
그같이 맥없이 분열해서 주저앉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누리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많이 걱정할 것도 없다.
친박, 비박, 독립적 재야—
이 세 그룹으로 이루어진 세발 정립(鼎立)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친박이 엉터리 같은 짓을 하면,
비박과 독립적 재야의 집중 포화를 맞는다.
만약 (요즘 김무성이나 정의화 같이) 비박이 엉터리 짓을 하면,
친박과 독립적 재야의 집중 포화를 맞는다.
게다가 독립적 재야는,
요즘 페이스북-트위터-카톡과 같은 [개인 소통] 덕분에 나날이 힘이 커지고 있다.
개인소통은 곧 SNS이다.
나의 관점대로 친구를 설정하고,
내가 세상을 보는 창(뉴스피드)을 구성한다.
SNS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관점을 가지게 되며,
가질 것을 장려 받는다.
개인의 출발점은 관점이요,
개인의 성숙점은 입맛(taste, 가치관)이며,
개인의 완성점은 진실-친화성이다.
개인이 진실-친화적인 까닭은,
“담백하게 진실을 인정하는 태도”외에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외로우면 연애하라!”는 거짓이다.
“외로우면 진실되라!”가 참이다.
오직 진실만이 개인을,
친구에게,
공동체에게,
겨레에게,
인류에게 이끌어 준다.
진실 속에서 개인은 인류적 존재가 되며,
인류는 개인적 존재가 된다.
4. 새민련의 죽음
며칠 전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이 이런 취지로 말했다.
“새민련은 왜 저런 바보짓을 계속할까?
이유는 하나다.
그것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김순덕 논설위원의 말 속의 참뜻을 밝히려면,
천기를 누설하는 수 밖에 없다.
한 번 누설해 보자.
대한민국 역사에는 인류 현대문명(modernity)의 운명이 숨어 있다.
유럽에서 300년 전에 태어난 현대문명은,
처음부터 피바다 광증 발작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문명이다.
1750년 대에 유럽인들은,
자기들끼리 살륙전을 벌여 백만명을 잡아 죽였다(칠년전쟁).
1790년대 프랑스에서는,
“이성적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들끼리 수십만명을 목 잘라 죽였다.
현대문명에는,
처음부터 피바다 광증 발작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현대문명에 내재된 이 피바다 광증의 유전자가,
20세기에 전체주의로 폭발했다.
공산 전체주의,
나치 전체주의,
천황 전체주의….
광기에 취한 문명은,
“피바다를 건너면,
천국과 같은 국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환각에 취해
수억 명의 인간을
체계적으로(methodically),
과학적으로(scientifically) 처형했다.
편집자 주 :
인간을
[개인]이 아니라 [떼],
사회를
[실험대상],
즉 인간을 [품종개량의 대상]으로 보고
사회를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전체주의]다.이런 [전체주의]에서는 항상
[피바다]가 빚어졌다.
▲舊 소련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 에조프가 스탈린에게 바친 사형자 명단은
책으로 383권인데 모두 4,500만 명이 넘는 인원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사진은 러시아 공산혁명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다.
히틀러의 나치 전체주의가 벌인 유태인 대학살.
일본 천황전체주의가 저지른 난징대학살.
월평균 4만영씩 처형한 스탈린 전체주의의 대학살.모택동 전체주의에 의해 벌어진 [대약진운동](1958~1962).
역시 모택동 전체주의가 주도한 [문화대혁명](1966~1976).
그리고 크메르 루주에 의해 저질러진 [킬링필드](1975~1979)[스탈린 대학살]의 희생자는 약 4천5백만명.
[대약진운동]의 희생자는 약 4천5백여만명.
[문화대혁명]의 희생자는 약 2천5백만~3천여만명.
[유태인대학살] 희생자는 약 6백만명.
[킬링필드]의 희생자는 캄보디아 전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2백여만명.
특히 [대약진운동]과 관련,
영국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논픽션상인 BBC <새뮤얼 존슨상>의
2011년 수상작으로
홍콩대 프랑크 디쾨터 교수(런던대 박사)가
쓴 <마오의 기근>에 따르면,
그동안 2,500만명 정도로 알려진 희생자수가
최근 중국 공산당이
공개하기 시작한 문서를 통해
4,500여만명에 육박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2010년 9월 출간된 이 책은
<이코노미스트>, <인디펜던트>,
<선데이타임스>, <이브닝스탠더드> 등의
<201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무엇이었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뉴데일리 DB
▲ 모택동의 문화혁명으로 죽은 사람 숫자는 많게는 1천만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뉴데일리 DB
한편,
현대문명 안에는,
20만년 인류의 로망에 이루는 길이 함께 존재해 왔다. .
지구촌 인류…
개인화된 인류…
인류화된 개인…
이것이 로망이다.
이는,
당당한 주체적 개인이며,
세계시장이며,
자유민주주의에 다름 아니다.
20세기 역사는,
공산 전체주의-나치 전체주의-천황 전체주의에 대한,
[세계시장과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개인들]의 거대한 저항 전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얼결에,
개인됨(시민됨)에 관한 각성 없이----,
이 거대한 아마겟돈의 최전선을 감당해 왔다.
이 최전선의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최전선에서,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더 세계시장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는 경제와,
어느 선진국만큼이나 인권이 만발한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오직 아직,
성숙한 개인됨(시민됨)에 관한 각성이 부족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자세”(자유민주주의, 자유통일, 세계시장 지지세력)이라 부른다.
우리 내부엔,
작게는 300년 현대문명의 흐름이 존재하고,
크게는 20만년 인류의 로망이 깃들어 있다.
반면 새민련은 어떤가?
국회의원들-기초의원들이 문제가 아니라,
당료-보좌관-지역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486 전대협 떼거리 이다.
나는 이를 [4전떼]라 부른다.
중앙당에 4~5 백명,
지구당 차원에 약 5천명이다.
새민련에 똬리 틀고 있는 이들은 또한,
노동계,
언론계,
법조계,
학계,
공무원,
교사,
교수에 존재하는 [4전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진보]는,
[4전떼]가 자기 이마빡에 억지로 박아 넣은 명찰용 문신에 지나지 않는다.
[4전떼]의 핵심 멘탈은 무엇인가?
“북한에 굴종해서,
혹은 북한에 협력해서,
권력을 손쉽게 잡아 보겠다”는 반미(反美) 친북 정치투기꾼 멘탈이다.
그래서 이들은 스무살 무렵부터,
이 흉측한 정치투기꾼 기질을 몸에 익혔다.
이들은 정치투기의 유혹에 빠져 학생 시절부터,
수령님-장군님이 우짜고,
백두산 줄기줄기가 저짜고 웅얼거리며,
스스로의 뇌수와 영혼을 파괴시켜 온
영혼의 불구자,
정신의 불구자,
심리의 불구자들이다.
또한 이들은,
문화 패거리들,
교수 나부랭이들,
문필 나부랭이들로 변신한 [4전떼]와 손잡고,
“조까!
떼촛불 들고 세상을 불태워 버리겠다“는,
짐짓 막가파 열정을 코스프레 하기도 한다.
이들의 막가파 열정이 코스프레인 이유는,
결코 북한 인공기에 촛불을 들이대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죄다 불태워 버린다!”는 막가파 열정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태극기-성조기와 함께
인공기-오성기도 불태웠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새민련의 오너인 이들 [4전떼]가,
그토록 떠 받드는,
혹은 애지중지하는 북한은 무엇인가?
공산 전체주의,
나치 전체주의,
천황 전체주의가 모두 망한지 수십 년이지난 지금,
지구에 오직 하나 남아 있는,
인류 최악,
인류 최후의 전체주의다.
마지막 임종 자리에서,
숨을 가르륵 가르륵 깔닥거리고 있는 체제다.
편집자 주 :
김일성-김정일은,
[스탈린 전체주의]와 [모택동 전체주의]를 모방한데 그치지 않고,
[일본 군국 천황제 전체주의]까지 끌어다
인류 최악-최후의 [짬뽕 전체주의]를 만들었다.
<뉴데일리>는 이를 [김가-천황-전체주의]로 정의한다.
▲ [김가-천황제-전체주의]가 완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3요소.
좌로부터 스탈린-일본천황-모택동ⓒ뉴데일리 DB
한마디로 새민련 오너, [4전떼]의 핵심 멘탈은,
[평양 앞에 무릎꿇기]이다.
그래서 새민련은 죽는다.
평양에 무릎 꿇기 하는 정치세력이 죽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 첫째,
평양 전체주의 자체가 급속하게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몽땅 거덜나서 망해가는 집구석을 [큰 집]으로 모시면,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다.
- 둘째,
평양에서 내려오는 오더가,
아무 일관성 없이,
[그때 그때 달라용~] 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때에는 일관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완전히 그 의미와 문맥이 다른 오더들이 내려온다.
김정일이 만든 평양에는,
집단 지도체제도 없었고,
시스템도 없었고,
책임-권한의 위임도 없었다.
대신 김정일은,
수천 수만 가지 일을 모두 혼자서 결정하고 조정했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일을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千手千眼)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demi-god)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이 신이 되면,
육신이 감당하지 못 한다.
그래서 나이도 별로 안 먹었음에도,
불어 터진 라면처럼,
온 몸의 기가 다 빠져서 죽었다.
- 셋째,
[4전떼] 내부가 서로 잡아 먹는 식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새민련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구 민주당 집단과 이른바 시민운동 집단(혁신과 통합) 사이에 벌어졌던 식인 잔치를 보면,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즐겁게,
서로를 잡아 먹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명숙을 내세워서
지난 19대 총선에서 자행됐던 식인 잔치를 보라!
(그들은 이 잔치를 [전략공천]이라 불렀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행됐던 식인 잔치를 보라!
이번 7월 재보선에서 자행됐던 식인 잔치를 보라!
(예를 들어 서울 동작구...)
이 식인 잔치 덕에 수도권 민주당 기반은 지금 궤멸되다시피 한 상태이다.
편집자 주
박원순의 총애를 받던 기동민 전 서울시부시장을 동작구로 전략공천하자
같은 486 전대협 출신인 허동준 지구당위원장(아래사진)이
강력 반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둘은 친구 사이였다.
왜 서로가 서로를 그토록 야비한 방법으로 잡아 먹을까?
북한이 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망하기 전에 얼른 뱃지 하나 주어 차서
인생 본전을 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4전떼]는 정치적 사행집행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4전떼]가 오너인 새민련은 죽을 수 밖에 없다.
5. 부활해서 최전선으로 오라!
새민련은 [세월호 노란 띠]라는 외통수에 걸려 빼도 박도 못 하고 죽는다.
죽음 치고는 가련한 죽음이요 제대로 된 죽음이다.
무릇 죽음은 가련할수록 죽음다운 것이다.
그래서 무인의 마직막 소원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이다.
죽음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부활이 이어진다.
게다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새누리나 박근혜 정부가
야권을 뿌리째 없애는 섬멸전을 할 수 있는
정치철학적 통찰과 정치공학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부활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새민련의 시체가 만들어내는 독기는,
다시 해체되어
새로운 부활을 위한 퇴비로 변해 간다.
부활의 방향은 [삼총사의 정신]이다.
대한민국은 우남 이승만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다.
최소한,
두 명의 든든한 조수가 있었고,
세 명의 삼총사가 있었다.
조수는 장덕수와 송진우다.
그래서 그들은,
우남을 견제하는 세력에 의해 일찌감치 암살당했다.
그러나 삼총사는 다르다.
이들은 [우남의 사람]이 아니었다.
이들은 비록 우남보다 연배도 경륜도 한참 아래이지만,
이들은 대한민국 건국 및, 농지개혁 등 제도 확립에 결정적 공을 세웠다.
삼총사는 누구인가?
- 첫째,
김구의 한독당을 배반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나선,
신익희다.
- 둘째,
소련 지령을 받는 공산주의 세력을 배반하고,
대한민국 건국 및 농지개혁에 나선,
조봉암이다.
(조봉암이 1950년대 말에,
북한 돈을 받았네, 안 받았네,
간첩이네 아니네라는 논의는,
내게는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다.
조봉암은 대한민국 건국에 크게 기여했고,
6.25를 이겨내게 만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었던 농지개혁의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가 그의 본질이다.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60년대 이후 우리사회 제도권 상류층이,
우남 이승만을 매도하고 망각시키는데 선봉을 섰듯이,
우리 사회 깡통진보가 조봉암을 망각시키고,
김일성-박헌영을 띄우는 데에 선봉을 섰다.)
- 셋째,
편협한 지주 계급의 이익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건국에 나선 거대 지주,
김성수다.

새민련이 죽은 그 자리에서 싹 터 나올 새로운 야권 세력은,
바로 3총사의 징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징표는 무엇인가?
우리 자자세(자유민주주의, 자유통일, 세계시장 지지자)는,
부활 세력의 징표는 다음 셋이라고 본다.
1. 북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북한 해방과 북한 인권을 지지한다.
2. 자유통일을 지지한다.
3. 우남 이승만의 역할 및 1948년 건국을 인정한다.
이중 특히,
1948년 건국 및 우남 이승만의 역할에 대한 인정이 중요하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떠받드는 깡통진보들,
그리고 “조선왕실 혹은 상해임시정부”를 그리워하는 복고주의자들은,
“1948년에 대한민국이 공화국으로서 건국되었다”라는 진실을 부정한다.
대신 이들은,
“대한민국은 애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매도하거나,
혹은,
“상해임시정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반편이”라고 폄하한다.
천만에!
대한민국은,
300년 현대문명의 최전선이며,
20만년 인류의 로망이다.
당당한 주체적 개인…,
인류적 개인…,
개인적 인류….
이 위대한 인류적 가치가 몸부림쳐서 만들어낸 삶의 터전,
이 위대한 인류적 가치가 매순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공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야권이 부활해야 한다.
우남의 협력적 경쟁상대(peer)로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삼총사의 후예로 부활해야 한다.
인류의 최전선인 이 곳으로!
야권에 있는 당신들을,
우리 자자세의 동지로서 초대한다!
출처 뉴데일리 / 박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