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더불어 이 나라 정치를 이끌어 온 양대(兩大) 정당이다. 현재 전체 국회의원(300명)의 43.3%인 130명이
새정치연합 소속이다. 새정치연합은 의원 60%의 동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만든 선진화법에 따라 국회를 움직이거나 세울 힘을 갖고
있다. 과거 어느 야당도 갖지 못했던 막강한 비토권(거부권)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새정치연합이 극심한 내분(內紛)에
휩싸였다. 당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박영선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를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에 앉히려 한 게 발단이었다.
새정치연합 내 친노(親盧)와 강경파들은 일제히 박 원내대표가 맡고 있는 비대위원장은 물론 원내대표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
원내대표는 '이 당에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아예 자신이 탈당(脫黨)하는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박 원내대표는 15일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두문불출했다. 당대표가 탈당을 입에 올리는 것은 정상적인 정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당 강경파들이 불과 한 달여
전 박 원내대표에게 비대위원장 자리를 떠맡겨 놓고선 곧바로 자리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 역시 정치의 정도(正道)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다.
새정치연합의 내분은 국회마저 마비시켰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여야 지도부와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뜻을 접어야 했다. 회담에 나오라고 부를 야당 지도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역시 속수무책으로 야당의 내분을 지켜볼 뿐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국면 내내 무기력·무소신·무능(無能)으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 국회는 이미 다섯 달째 법안 처리 '0건'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와 정당, 정치가 작동(作動) 불능, 기능 정지 상태에 빠져들면서 정치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과 허무주의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미국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반(反)정치 현상'으로 몸살을 앓았다. 우파에선 조세(租稅) 저항을 외치는 티파티 출신들이
정치를 쥐락펴락했고, 좌파에선 미국 금융가를 점령하겠다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양쪽 극단(極端)의 흐름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 채
대립 정치만 장기화시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해머와 최루탄까지 등장한 국회 폭력의 참담한 현실이 새 정치를 바라는 염원으로 이어져 '안철수
현상'을 일으켰지만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세월호 참사 후 드러난 정치의 무능·무기력과 맞물려 또다시 극단의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월호 유족 및 관련 단체들의 농성, 이에 맞서는 반대 시위가 연일 충돌하는 서울 광화문광장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유럽의
경제 위기가 극단적 주장을 펴는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호기(好機)가 됐던 것과 같은 일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다시는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없도록 하겠다는 원래의 다짐을 실현할 수 없다.
한 국가와
사회가 대형 재난 후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그 상처를 딛고 정상으로 되돌아오느냐 하는 복원력(resilience)은 해당 공동체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나라는 6·25전쟁을 비롯, IMF 금융 위기 등 숱한 국가적 위기를 딛고 넘어왔다. 세월호 참사만 그렇지 못한 예외가
되어선 안 된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정치가 국가의 복원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정당의
자멸(自滅)'을 넘어 '정치의 자멸'로 이어질 수도 있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