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한 개헌(改憲) 관련 발언에 대해 "제 불찰이었고 실수"라고 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께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계시는데 (개헌론으로 파장을 부른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고도 했다. 그는 "정기국회 끝날 때까지 개헌 논의가 없기를 바란다"면서 내년에 개헌론을 주도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전날 상하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며 '오스트리아식 이원(二元)정부제'를 제시했다.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마치 중대한 결심을 했다는 결의마저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열흘 전 "개헌론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제동을 걸었는데 여당 대표가 앞장서서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인 듯한 모양새였다. 그랬던 그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150여석 거대 여당을 이끄는 당대표로선 경솔하기 짝이 없는 처신이다.
김 대표는 '실수'라고 했지만 정치권의 누구도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5선(選) 의원에 당정(黨政)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그런 김 대표가 미리 비(非)보도 요청도 하지 않은 채 기자 수십 명 앞에서 개헌 얘기를 꺼냈을 때 어떤 해석과 논란을 부를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래서 김 대표의 의도적 '치고 빠지기'라는 둥 온갖 억측과 해석이 쏟아졌다.
김 대표는 그동안 입만 열면 '당과 청와대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해 왔다. 그런 김 대표가 자신의 개헌 발언 소동에 대해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에게만 '죄송하다'고 했다. 국민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불쾌한지는 관심도 없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개헌은 국가의 백년지계(百年之計) 차원에서 국론(國論)을 하나로 모아 차분하게 추진해야 할 문제이다. 국회의원 절대다수는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김 대표가 언급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외치(外治)를 맡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내치(內治)를 맡는 이원정부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국민은 개헌 논의를 이끌고 있는 국회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큰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지도자들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합리적 대안(代案)을 갖고 국민을 상대로 차분히 개헌에 대한 이해 폭을 넓혀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집권당 대표부터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발언으로 혼선을 부추기고 갈등만 키웠다. 정치권은 헌법보다 먼저 고쳐야 할 것이 바로 정치인들 자신이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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