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線(비선)이 없었던 역대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은 비선이 없으면 안 된다. 여기서 비선은 系線(계선)의 반대말이다. 계선은 정부 조직의 계통을 말한다. 대통령이 비서실장, 수석, 장관, 국정원장, 여당 대표 등을 통하여 올라오는 보고를 받으면 이게 정상이고 계선이 된다.
비선은 그런 계통을 밟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접 올라가는 보고의 채널이다.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부속실장을 통하든지, 대통령의 知人(지인)을 통하여 올라가는 私的 보고는 비선 보고이다.
비선 보고는 무조건 나쁜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관료나 與黨(여당)의 계선 이외에 자신만의 정보 채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선의 보고를 검증, 견제할 수 있다. 정보는 다양하게 섭취하되 판단은 주체적으로 하면 된다.
그렇다면 비선의 한계와 위험성은 무엇인가?
1. 정보가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단계에서 검증되는 조직의 정보보다 개인적 정보는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2. 비선이 대통령에 대한 접근권을 과시, 대통령 아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그런 식으로 비선이 스스로를 노출시키면 더 이상 비선이 아닌 존재가 된다. 대통령은 그를 버려야 한다.
3. 비선이 정보 제공이나 건의의 한계를 넘어 人事나 利權(이권)에 개입하면 범죄가 될 수도 있다.
4. 인간적 관계나 연줄을 重視(중시)하는 한국에선 ‘대통령과 채널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소문이 날 경우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쏟아지는 청탁과 몰려드는 사람들로부터 맨 정신이나 비밀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5. 평상심과 애국심과 지혜를 가진 先公後私(선공후사)의 교양인이 秘線 역할을 하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대통령이 나서서 그런 이들을 비선으로 선택하는 게 좋지만 권력자가 그런 이들의 諫言(간언)이나 충고를 기분 좋게 수용하기란 어렵다.
6. 朴 대통령의 경우도 비선의 존재 有無보다는 비선이 國政(국정) 운영에 긍정적 역할을 하였는지, 법률 위반이 있는지의 與否(여부)로 따져야 할 것이다.
출처 조갑제 닷컴 조갑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