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돌이켜보면 상반기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정지시킨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시간을 보냈다. 지난 정권 초기의 광우병선동사건 때와 같이 하나의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정치인들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 사건을 정치 영역 밖으로 이끌고 나갔다는 점이다.
계속 반복되는 이러한 현상은 정치인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지 않고 사건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정치공백의 공간인
해방구(解放區)로 내몰아서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확대되는 정치부재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해방구에서의
격화되는 대립은 법적분쟁으로 발전하고, 문제는 정치를 떠나서 사법부로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모든 사건의 사법화, 이는 정치의 실종이고
정치실패의 결과이다.
정치공동체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정치공간이 소멸될 때 정치는 실종되고 무수한 주장들이 대립하는 해방구가
난립한다. 정치리더십이 흔들리거나 부재 시에 또는 사회 변혁기에 국가권력의 빈공간인 해방구가 탄생하는데 정상적인 상황에도 정치세력들은 세력의
변화를 꾀하기 위하여 이러한 빈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말처럼 이러한 현실을 사회적 변동기의 정치적 사유가 탄생하는
계기라고 본다면 어떻게 정치실패를 극복하고 정치가 다시 회복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실패의 원인,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생각하지 아니함
먼저 정치를 논하는 전제인 정치공동체를 생각해 본다. 그러할 때
해방구의 난립이라는 정치실패의 현실은 대한민국을 실체적인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보지 않는 경향에서 야기된 것 같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지만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건국절이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한국사회는 정치에 있어서 정치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실체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치공동체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그 다음단계로서의 정치논의의 장을 열기 어렵다.
근대국가는 세속적인 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실체성이란 그것이 이념과 이데올로기, 종교와 지식에 무관하게 세속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며, 이념과 종교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공화국내에서의 가치이고 공화국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자민족중심주의를
내세워서 끊임없는 친일논쟁으로 과거 캐기에 몰두하면서 공화국의 실체성을 부인할 것인가? 언제까지 진보를 가장한 사회주의자들이 민중이라는 계급을
내세워서 특정 국민을 배척하는 분열투쟁으로 국헌을 문란하는 것을 방관해야 하는가?
정치공동체는 그 안에서의 정치행위에 따른 책임을
각 구성원이 지는 것을 전제로 하여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법치주의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며, 모두가 준수할 법을
만든다는 것, 그 법의 실현을 위한 절차를 존중하는 것, 결과에 대한 승복을 가리키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정치 실체인 국가에 대한 긍정이 없는
공동체를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만든 질서에 대한 존중, 즉 자기 존중인데, 자기 존중이 없는 공동체를 생각하기
어렵다.
근대사의 유산은 세속적으로 "공적인 것", 국가를 창조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공동체인 대한민국을 전제하지 않는 한 정치논의는 어렵다. 오늘의 정치실패의 현실은 이러한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의 의식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정치실패의 극복, 정치논의의 장의 구성
일반적으로 정치실패의 원인을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라는 점으로 설명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제안등 여러 가지 제도적 논의들이 오가고 있지만 아직 미래의 정치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거버넌스를 정립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현실의 정치문제를 풀어갈 정치 논의의 장의 구성이라는 과제는 제도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그
안에서 정치가 논하여지는 절차와 방식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것이다.
먼저 모든 것을 정치 문제로서 논의할 수 없다는 논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이 정치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자끄 엘륄의 지적처럼 개인의
문제인 선과 악, 진실과 정의, 생의 의미에 대해서 정치는 대답할 수 없다(자끄 엘륄, 정치적 착각).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정치를 넘어서는 주장이다. 정치는 정치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을 남겨두는 것이다.
정치는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절차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폭력을 배제하고 합의로 만들어진 규칙과 절차에 의해서 논의가 진행된다는 것, 바로 그 절차에 대한 존중,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고 할 것이다. 정치는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 논의의 장에서 나오는 결론이라는 것은 결국은 배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문제가 정치의 장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이고, 정치의 장에서 논해질 필요성이다. 정치는 배분이라는 결론을 낸다. 결국 이러한 정치 논의의 과정을
이끌고 결과를 도출해가는 정치인이 그 이행 과정을 설명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설득하는 리더십의 문제가
제기된다.
정치실패의 극복, 책임 있는 정치 리더십
정치는 설득과 이에
대응하는 양보와 합의를 통해 수행된다. 그 과정에는 책임이 수반된다. 눈치를 보느라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정책이란 실행해
보아야 결과를 알 수 있다. 미래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미래를 아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리더십은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서 신중한 행동을 하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정치인은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자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제도만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정치로 인하여 성립한다. 정치실패의 극복을 위해서 정치적 리더십이 바로 서야 할
것이다.
각종의 해방구의 난립으로 인하여 정치가 실종된 시대에 정치를 다시 찾아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내에서 바람직한 삶을
살기위해서 정치를 한다. 그러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전제로 하여서 정치 논의의 장을 확립하고 논의를 활성화시키며 그
과정에서 책임 있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이러한 과제는 우리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출처 이인철 (변호사, ddungyee@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