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에서 북한군개입에 대한 조갑제 대표의 주장과 그의 책 조갑제의 광주사태를 읽고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결사적으로 아니라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우선 북한탈북자의 증언의 위증 여부를 먼저 검토하여 신중히 처리해야할 사안이라고 본다. I 해마다 5월이 되면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5.18을 바라보는 첨예한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5.18논쟁의 기폭제가 된 것은 2006년 겨울 북한군출신 탈북자출신들은 세실레스토랑의 기자회견에서 “북한군 특수부대가 약 1개 대대병력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폭탄선언이 있은 후부터였다. 2년뒤인 2008년에는 지만원박사의 『수사기록으로 본 12.12과 5.18』전4권(2008)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5.18에 대한 재검증이 시작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5.18광주사태의 성격과 배후에 대한 의혹에 의구심을 품는 세력과 ‘민주화운동’이라는 97년의 대법원 판결을 신봉하는 세력간에 대립은 인터넷상의 논쟁으로 불이 붙어 더욱 가열되었고, 이것은 지역성 정서와 혼합되어 우리 사회를 이념적 대립과 지역적 분열로 치닫게 하고 말았다. 한반도의 자유민주적 통일로 향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국론결집이 필요한
I 11월 27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동교동 자택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예방을 받고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려하고 있다고 주장한 일단의 인터뷰 내용으로 인해 김대중에 대한 격렬한 비판의 목소리가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돌출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은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이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정국의 결정적 순간순간 마다 자신의 정치적 친북좌파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내어왔다. 작년 선거기간에도 김대중은 정권교체가 되면 “남북관계에서 파탄이 날 것”으로 경고하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내비쳤으며, 올해 봄 촛불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시위자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중경상을 입었고, 수십 대의 전경버스가 파손되는 등 진압에 곤욕을 치루는 난장판의 한 와중에서도 “아테네 민주주의 이후 직접 민주주의”라고 찬양하면서 좌익폭동을 선동⋅격찬했었다. 처음부터 국민들이 김대중으로부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한때 김대중과 정치적 동지였고, 군부내의 하나회 숙청과 정계에서 보수우파 제거 등으로 좌파정부 등장에 상당부문 기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북
I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는 나라가 커서 없어질 염려가 없지만, 또 영국과 일본의 경우 4면의 바다로 인해 외세의 침공의 염려가 없지만,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인 경우 자칫하면 나라가 없어지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허다했다. 유럽 강대국에 둘러싸인 폴란드의 경우, 혼란스런 프랑스혁명의 와중에서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3차 분할합방으로 나라가 없어졌다가 1차대전이후 간신히 국권을 회복했다. 한국의 경우, 19세기말 한반도 제패를 위한 청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3각 쟁탈전이 벌어져서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이라는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결국 勝者 일본의 조선 침탈 야욕이 달성되었고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우려를 표명한 강대국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러시아 팽창을 억제하는 댓가로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승인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36년동안 국권을 상실했었다.II 2차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으로 45년 해방이 된지 꼭 3년뒤인 48년에 대한민국은 건국되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을 되새기는 국민은 많아도 건국의 역사적 의미를 반추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48년에서 50년 6.25직전까지의 세월을 다시 돌이켜 본다면, 신생국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