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촛불집회 민심에 대국민 담화를 통해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했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촛불민심을 국민전체의 민심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불법시위대에 항복을 하고 있었다. 이대통령은 광우병 문제에 대해서만 항복한 것이 아니었다. 불법시위자들을 위한 진정용 희생양으로 청와대 참모들의 목을 주저없이 쳤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인가? 희생양들인 그들은 이대통령이 냉혈한(冷血漢)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각기 일하던 곳에서 그를 위해 떠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청와대에 입성한지 117일만에 망신만 톡톡히 했다. 또한 이대통령은 유사이래 전무후무할 대운하 사업조차도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광우병 거짓말을 퍼뜨리며 불법폭력시위를 일삼던 자들과 그들을 조종하는 자들은 환성속에 승리의 축배를 들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대통령을 보며 이렇게 소신이 없고, 나약하고 겁많은 자인줄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스스로 자책할지도 모른다. 이대통령의 항복을 어떻게 볼까? 530만여표의 차이로 압도적으로 이대통령으로 선택한 대다수 보수 우익은 이대통령의 항복을 보며 찬탄보다는 냉소와 함께 ‘대통령감’
“난리(亂裡)판에 도둑놈들 살판 난다”는 우리 속담이 전해온다. 그 속담은 세상이 무법천지로 혼란스러울 때 도둑같은 자들이 탐욕스럽게 광분(狂奔)한다는 뜻일 것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와 정치판을 보면 앞서의 속담이 실감이 난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연일 불법시위가 벌어지는 난리판에 취임 백일을 갓넘긴 이명박 대통령을 만만한 동네북으로 쳐대고, 급기야 정권퇴진을 외치는 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또 난리판에 권력투쟁의 내분을 일으키는 신호탄을 올리는 정신나간 한나라당 의원들이 있다. 역시 이자들도 이대통령을 동네북으로 치부하려는 것같다. 자나깨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만복을 기원하는 필자로서는 우국충정(憂國衷情)으로 어설픈 논평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난리판의 도둑같은 자들은 누구인가? 첫째, 광우병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는 군중속에 합세(合勢)하는 척 동참하면서, 정부전복의 딴 전(廛)을 펴려는 극좌파 인사들이다. 주지하다시피, 작금의 서울 한복판 광화문 일대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격분하고, 흥분한 군중들이 연일 무법천지의 과격시위를 해오고 있다. 광우 쇠고기를 환영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 그 광우병 쇠고기의 부당성을 외치는
쇠고기와는 인연이 없지만, 광우(狂牛) 쇠고기로 인해 연일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법을 어기고 무법천지같은 시위를 벌이는 안타까운 현상에 일언(一言) 하지 않을 수 없다. 광우 쇠고기를 먹고 일정 시일이 지나면 광우처럼 미쳐버린다는 과학적 말을 듣고 광우 쇠고기를 먹을 사람은 없다. 쇠고기와 인연이 없는 승려들도 광우 쇠고기에 대해 역정을 내고 군중 시위판에 출현하여 광우 쇠고기의 부당성에 시정을 요구하는 악을 쓰고 있다. 어느 중학생은 나이 지긋한 사람은 광우 쇠고기를 저렴하게 배부르게 먹어도 저승갈 때가 가깝기 때문에 원통하지 않겠지만, 살날이 창창한 학생들이 광우병이 발병하여 죽으면 얼마나 원통하느냐,는 요지로 분기탱천(憤氣撑天)해 있다. 어찌 중학생들 뿐일까. 일부 초등생들까지 학교급식에 광우 쇠고기가 나올 수 있다며 분기(憤氣)를 토하고 있다. 전교조 선생들이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활발히 학생들에게 역설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교조의 공덕이던, 노동운동조직의 공덕이던, 지난 대선, 총선에 일패도지(一敗塗地)한 구 여당(舊 與黨)인 야당의 공덕이던 항설(巷說)의 좌빨의 공덕이던 순수 광우 쇠고기문제로 팔을 걷고 나선 애국시민의 공덕이던 작금의 서을 한복판에
순수히 광우병을 걱정하는 시위대를 제외한 김정일로부터 사주를 받는 대한민국 내 종북정치인들에게 동네 개쫓기듯 할 수 밖에 없는 국정능력 부재의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일찍 하야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대한민국 장래를 위해서 좋을 것 같다. 누군가, 국가보안법으로 휴전상태인 대한민국 정체성을 수호하고, 안정속에 4만불 시대로 국민을 이끌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은 종북정치인들이 광우난동(狂牛亂動)을 빙자하여 청와대로 진격하여 총성을 유발하여 자신을 내쫓으려는 기획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좌고우면(左顧右眄)으로 삼혼칠백(三魂七魄)이 빠진 것 같다. 지난 대선에 530만표가 앞서게 하여 압도적으로 이대통령을 만들어준 보수우익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애국 국민들은 주먹으로 땅을 치고 개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대한민국은 소위 군사정부, 필자는 무장출신 대통령들 외에 문민정부들어서는 문민을 앞세운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는 반역자들이요, 배신자들이라고 지탄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택하여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이 세상 어떠한 이유나 명분보다도 대한민국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민정부라고 자처하는 Y
우리 단군 민족은 언제나 숙명같은 참혹히 살육당하는 시산혈해(尸山血海)의 살겁(殺劫) 역사에서 완전히 해탈할 수 있을까? 절대권능의 신이 우리민족에게 내려주는 천벌(天罰)인가, 아니면 우리 민족 개개인과 다수인들이 지은 인과응보의 업(業)인가? 참혹하고 비통한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1천회에 가까이 외침(外侵)을 받았다. 작게는 2년마다 크게는 4년의 주기를 두고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참혹히 살육 당하는 살겁(殺劫)을 당해왔다. 살아남기 위해서 점령군이 원하는 대로 공녀(貢女)와 재물 등을 바친 비통의 역사가 있다. 우리 민족이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전쟁이 없는 병화불입지처(兵禍不入之處)의 낙토를 찾아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길을 떠나 헤메었을까. 풍수지리(風水地理)가 화제중심이었을까. 우리 민족의 참혹한 살육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만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한반도 좁은 지역에서 삼국시대(三國時代)로 국경선이 있을 때, 우리 민족끼리 밀정(密偵)과 자객을 보내고, 자국(自國)이 중심이 되는 통일을 하기위해 무수히 서로 침략전쟁을 일으키어 살육을 해댄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북한군을 위한 무장봉기 위험을 사전 봉쇄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우리 인생 세계가 영원한 것이 없다는 깨달음의 소식이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이렇게 유훈을 남겼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다 방일(放逸)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諸行無常 不放逸精進)”. 그러나 제행무상은 비통(悲痛), 낙루(落淚)가 있는 소식이기도 하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 필자가 인생 처음 ‘제행무상’의 붓글씨를 받은 것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李方子)여사에게서 받았다. 70년대 말, 불교신문사 편집국장 시절, 인터뷰 문제로 불교신자인 이방자여사를 궁(宮 )으로 찾았을 때, 이방자여사는 필자의 성이 전주 이(李)라는 것을 확인한 후 무척 반가워했다. 그 때 이방자여사는 기념선물로 제행무상을 써주었다. 불연(佛緣)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꿈같은 자신의 지나온 생애를 언급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것을 통석(痛惜)해 하고, 제행무상을 말하며 낙루(落淚)했다. 필자는 무자년에 또 불연이 있었다.무자년 ‘부처님 오신날’은 부산 청사포에 자리한 해월정사에서 맞이했다. 필자는 해월정사 회주(會主) 진천제스님의 배려로 법당에서 봉축사를 할 수 있었다. 오공(午供)이 끝나고 차를 마시는
불교와 함께 자연에 찬사를 보내고, 무소유사상(無所有思想)을 강조하여 범속(凡俗)을 초탈한 것 같이 승속(僧俗)의 찬사를 받는 법정스님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국책사업에 정면으로 반대에 나섰다. 그는 지난 4월 20일 자신의 설법도량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법회에서 불교계를 향해 “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이라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불교계를 향해 봉기(蜂起)를 촉구하는 것 같은 발표를 했다. 그 발표는 불교방송을 통해 전국에 확산되었다. 법정스님은 그동안 매번 정부 국책사업을 반대해오던 불교환경단체의 배후에서 있다가 드디어 불교환경단체의 총수(總首)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법정스님의 발표는 불교계 전체 공론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와 불교계를 위해 우리는 법정스님의 그동안 운동행적(運動行跡)에 심사(深思)하고 찬반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산 순환고속도로 반대 농성장에서 독려하고 있는 법정스님. 반대농성으로 수천억의 국민혈세가 허비되고, 시민들은 교통난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한국에 법정스님만큼 글로서 무소유와 자연보호를 외쳐온 승려가 또 있을까? 그의 무소유는 세속정치와 조계종 정치를 초월하고, 문
종북위정자(從北爲政者)인 DJ와 노무현의 농간으로 대한민국호(號)의 배의 침몰 직전에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보수 우익들이 총력을 기울여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지 수개월이 지났다. 이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보수우익의 절대소망인 종북위정자들이 훼손한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에 누구보다 앞장 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 회복에 가시화(可視化)하는 것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종북위정자들이 벌인 반역적 정치사안들에 추인(追認)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인가, 싹수가 노란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두고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인가? 일부 보수 우익논객들의 이명박을 향한 질타성(叱咤聲)이 나날히 고조되고 있다.이명박 대통령이 종북위정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은 몇 가지 있다. 첫째, 한미동맹(韓美同盟) 복원노력이다. 둘째, 여자 초등생 납치 때 순발력 있게 사건발생지역 경찰서에 직접 출현하여 납치된 초등학생을 분초(分秒)를 다투워 구원하려는 모습이다. 초등학생 납치문제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국민들이 타국에서 부당히 해코지 당하면 항모전단(航母戰團)과 특전대를 특파하며 자국민을 위해 세계를 향해 공갈협박을 해대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