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09년 6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기동 139 이북5도청에서 열린 강연회에 연사로 참석하였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李相哲 위원장으로부터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을 좌파정권이 이벤트성으로 惡用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동안 1600명의 이산가족이 在北 가족과 만났습니다. 이를 成事시키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북한측에 지원한 금액이 약1조6000억원입니다. 한 사람이 한번 만나는 대가로 10억원씩 지불하였다는 계산입니다. 그렇게 한번 만난 뒤는 또 연락이 두절되니 고통이 加重되는 것입니다. 12만5000명의 이산가족이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50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던 중 벌써 3만5000명이 별세하였습니다. 李相哲 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를 북한人權 문제로 국제사회에 제기하는 방향을 잡고 있다고 하였다. 작년엔 대표단을 만들어 유엔에 가서 호소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정권은 세계에서 最長期間, 最多의 인원을 갈라놓고, 生死확인도 해주지 않고, 소수의 인원을 골라서는 동물원식 상봉을 시켜주고는 돈을 뜯어먹는 反인류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6.25 전쟁중 월남하여 이산가족이 된 1세들은 약30만명만
미국의 권위 있는 정책 잡지 ‘포린 폴리시’는 매년 ‘실패한 국가 랭킹’을 발표한다. 2008년에는 177개국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실패국가 랭킹 1위는 소말리아였다. 실패국가로 분류된 30개 나라들을 소개한다. 1. 소말리아 2. 짐바브웨 3. 수단 4. 차드 5. 콩고민주공화국 6. 이라크 7. 아프가니스탄 8. 중앙아프리카공화국 9. 기니아 10. 파키스탄 11. 아이보리 코스트 12. 아이티 13. 버마 14. 케냐 15. 나이제리아 16. 이디오피아 17. 북한 20. 예멘 21. 방글라데시 22. 동티모르 23. 우간다 24. 스리랑카 25. 니제르 26. 부룬디 27. 네팔 28. 카메룬 29. 기니아-비사우 30. 말라위 -------------------------- 성공한 나라들은 177개국 중 끝 번호쪽이다. 성공국가 30개 명단을 싣는다. 1. 노르웨이 2. 핀란드 3. 스웨덴 4. 스위스 5. 아일랜드 6. 덴마크 7. 뉴질랜드 8. 호주 9. 네덜란드 10. 오스트리아 11. 룩셈부르크 12. 캐나다 13. 아이슬란드 14. 일본 15. 포르투갈 16. 벨기에 17. 영국 18. 싱가포르 19. 미국 20. 프랑스 21. 독일 22
主敵의 核무장을 도운 반역 행위는 보통 사형으로 처벌한다. 조갑제닷컴 폴란드를 방문중인 李明博 대통령은 7일 바르샤바 영빈관에서 유럽의 유력 뉴스전문채널 `유로뉴스(Euro News)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李 대통령은 지난 3월 30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지난 10년간 북한을 많이 지원했음에도 불구, 북한은 결과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었고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對北 신뢰도는 이전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언급했었다. 李 대통령은 또 북한이 만드는 대량살상무기가 다른 국가에 전수되고 또 核물질이 넘어가게 되면 核보유 유혹을 받는 나라가 많아질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굳건하게 보조를 맞추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다고 본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해왔으므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에 대해서 李 대통령은 사실 가장 폐쇄된 나라의 지도자다. 모든 나라가 개방화와 국제공조를 통해 발전하고 있는데 북한은 완벽하게 폐쇄된, 우리로서는 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에 40억 원 이상의 국민세금이 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建國 이후 한 개인의 장례식에 이처럼 많은 예산을 쓴 것은 처음이다. 납세자의 권리로서 우리는 이 돈이 정당하게 쓰여졌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수사를 받고 기소 직전에 있던 형사사건 피의자가 자살하였는데, 무슨 근거와 이유로 국민장을 하게 되었는지 정부는 事後에라도 국민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2. 국민장의 진정한 주최자는 장례경비를 댄 국민과 국민을 대리한 정부, 그리고 장례위원회일 것이다. 그들은 이 돈을 누구를 위하여 썼는가? 故人의 명복을 빌고 국민들의 통합을 도모하는 데 써야 할 돈을 어떻게 썼던가? 3. 喪主도 아닌 일부 세력이 李明博 대통령이 보낸 화환을 짓밟고, 국회의장의 조문을 폭력으로 막고, 李會昌 자유선진당 총재에게 계란을 던졌다. 국민장 당일엔 親北 전대협 출신 야당 의원 등이 獻花하는 대통령을 향하여 입에 담을 수없는 惡談을 하였고 이것이 생중계되었다. 이런 無禮와 無法을 방치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4. 먼저 장례위원장 한승수 총리가 져야 할 것이다. 40억 원 이상의 국가예산이 든 국민장을 ‘저주와 증오의 무대’로 변질시킨 1차적 책임은
사법부판 촛불사태로 불리는 소장 판사들의 집단행동은 작년 촛불난동과 맥이 닿아 있다. 1. 작년 구속기소된 촛불난동 주모자와 불법시위자들에 대한 재판을 둘러싸고 중앙지방법원장과 소장판사들 사이에 갈등과 이견이 있었다. 6.25 휴전 이후 처음으로 서울 도심부가 좌경폭도들에 의하여 석 달간 밤만 되면 해방구가 되었다. 일부 판사들은 놀랍게도 이 폭도들에 대하여 재판지연, 보석, 實刑면제, 구속영장 기각 등의 방법으로 동정적 태도를 보였다. 2. 이런 사태를 우려한 신영철 당시 중앙지법원장은 이메일이나 전화로써 재판을 신속하게, 정상적으로, 신중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누구를 엄벌하라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든지, 나무라든지 하지 않았다. 상사, 선배로서 그야말로 바람직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때, 법원장에게 재판간여라고 공식으로 항의하는 판사도 없었다는 것은 이런 충고가 관행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 수개월이 지난 올해 초 한 부장판사가 신영철 현 대법관이 보낸 이메일 등을 외부로 익명폭로하였다. 방송과 야당과 좌파세력이 일제히 이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평소 특정 사건에 대하여 불평을 토로하고
좌익폭동 재현의 가장 큰 책임자는 이용훈 재연한 촛불난동의 가장 큰 책임자는 이용훈이란 대법원장이다. 작년에 석달간 불법야간폭력시위를 벌여 한국의 심장부를 마비시켰던 좌익성향의 주모자와 악질적인 폭력행위자들을 검찰이 구속기소하자 판사들이 거의 전부를 보석, 집행유예 등으로 풀어주었다. 경찰관을 폭행한 자들을 특히 다정하게 대하였던 게 담당 판사들이었다. 촛불난동자들은 난동 1주년을 맞아 참회하고 숨어지내야 할 터인데 오늘 또 다시 도심부를 無法천지로 만들었다. 이 주모자들이 믿는 것은 좌익의 폭동을 너그럽게 봐주는 일부 판사들일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잡아가 봤자 그 판사들이 풀어줄 것이니 마음 놓고 깽판을 치자는 생각이 없다면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 판사들이 폭력시위자들에 대한 재판을 미루는 것을 보다 못한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통상적인 절차대로 재판하라는 권고를 한 것을 한 부장판사가 마치 재판에 간여한 것처럼 과장하여 외부로 폭로하자 신영철 현 대법관을 조사하게 하고 윤리위에 넘긴 사람이 이용훈씨이다. 대법원장이, 폭력을 감싸는 판사들의 간을 키워주고 있으니 폭력시위 전문가들이 자숙할 리가 없다. 노무현이 자신의 좌경코드에 맞춰
*보징카 작전: 김포공항 출발 넉 대의 미국 여객기 등 12대에 폭탄장치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 성공했다면 4000명 사망. *한국판 9.11 테러 계획: 미국의 9.11 테러와 동시에 아시아에서 미국 여객기 납치, 駐韓(주한)미군 기지와 駐日 미국 대사관에 突進(돌진)! *보징카 계획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제1차 테러범 유세프가 주도, 駐韓(주한)미군기지 공격은 9.11 테러 배후 지휘자 모하메드가 구상하고 빈 라덴이 결심. *보징카 작전은 아지트에서 불이 나 음모 발각, 한국판 9.11 계획은 납치의 타이밍을 맞출 수 없어, 뉴욕 작전에 전념하기로 하고 포기. 趙甲濟(월간조선 편집위원 겸 조갑제닷컴 대표) 김포 공항 출발 넉 대 등 12대의 미국 여객기 폭파 계획 1995년 1월21일과 22일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네 편의 美국적 여객기를 포함한 12대의 東아시아 출발 미국행 비행기를 태평양 상공에서 동시에 폭파시키려는 알 카에다의 테러계획이 실행 직전에 발각되어 저지된 사건을 아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 作戰(작전) 개시일을 보름 앞둔 1995년 1월6일 마닐라의 공작원 아파트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음모가 드러나고 주모자들은 달아났다. 이 계획은 보징카
땀 흘린 사람을 저주하는 자들에겐 응징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 趙甲濟 한 애국인사가 自作詩를 낭독하였다. 이런 名句(명구)가 있었다. 남이 흘린 땀으로 빵을 얻어 먹으면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남이 흘린 땀으로 빵을 얻어먹으면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희망이있다.가르치면 된다. 남이 흘린 땀으로 빵을 얻어먹으면서 땀 흘린 사람을 저주하는자들에겐 응징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 나라는 착한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게 아니라 惡黨을 응징하지 못할 때 망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일하는 방식은 확인-현장-실무-결과 중시로 요약할 수 있다. 실사구시 정신, 즉 현실과 사실에 기초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실용주의자로서 박 대통령은 責務(책무)를 해내는 사람일 경우 도덕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덮어주고 重用(중용)했다. 그는 총무처 장관 李錫濟가 부패 공무원들의 문제를 제기하자 “일 잘하면서도 깨끗한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 봐!”라고 했다. 공무원들의 월급이 생계비에 미달되는 상황에서 깨끗한 사람만 찾다가는 무능한 사람들만 모을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이 담긴 말이었다. 그는 또 잘해보려다가 실수한 부하들을 잘 감싸주었다. 아울러 장관들에게 차관 인사를 위임하는 등 인사권을 보장해주었다. 권한을 많이 주는 대신 결과를 철저히 따져 무능을 아부나 선전으로 메우려는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았다. 그는 공무원 집단을 일 잘하는 조직으로 개조하고 이들을 牽引車(견인차)로 내세워 국민들을 끌고 가게 했다. 박 대통령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잣대가 있겠으나 ‘국민들로 하여금 가장 열심히 일하도록 한 사람’이란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생산성이 가장 높았던 대통령이란 의미이다. 黃秉泰(황병태·전 민자당 국회의원 및 駐中(주중) 대사 역임)는 경
북한 지배층 내부의 여론 동향 “무는 개는 안 짖는다”는 俗談이 있다. “짖는 개는 안 문다”는 말도 된다. 북한정권은 작년부터 여러 차례 對南군사도발을 위협하고 있다. 동원하는 낱말들이 극단적이다. 이는 오히려 북한정권의 취약성과 불안감을 엿보게 한다. 정권 내부의 약점을 덮기 위하여 미사일 발사, 해상 도발 등 남북관계에서 긴장을 조성하려는 듯하다. 작년 7월초 북한군은 금강산에 관광을 간 한국인 여성이 군사지역에 들어왔다고 사살하였다. 李明博 정부는 사건 당일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다. 작년 8월부터는 金正日이 심장 혈관계통의 重病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가을에 접어들자 북한측은 개성공단내 한국인 근무자들을 추방하더니 개성관광도 중단시켰다. 수천만 달러의 수입 감소를 각오하고라도 내부단속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정권은 김정일이 金大中 및 盧武鉉 전 대통령과 맺은 6.15 선언, 10.4 선언을 실천하라고 압박하였으나 李明博 대통령은 이런 북한측을 향하여“뜯어먹으면서 살 생각을 하지 말고 自立하여 살 궁리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충고를 하였다. 한국은 좌파정권下에서 매년 약10억 달러의 金品을 북한에 지원하였으나 작년은 거의 끊겼다. 무역액이 30
요사이 서울에 와 있는 일본 특파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은, KAL機 폭파범 金賢姬와 북한에 납치된 일본 여성 다구치 야에코씨 아들의 만남이다.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만나는가를 알아내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月刊朝鮮 2월호에 金賢姬씨 인터뷰를 실은 관계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다구치 야에코씨는 김현희씨가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을 때 일본어를 가르쳐주었던 ‘리은혜’의 本名이다. 2002년 9월17일 김정일은 訪北한 고이즈미 당시 일본 수상에게, 북한공작조직이 다구치씨를 납치하였고, 그녀는 사망하였다고 통보하였으나 일본에선 살아 있다고 믿는다. 김현희씨도 북한이 다구치씨를 일본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은 것은, 김정일이 지령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가 공식화된 것은 김현희씨에 의한 리은혜 증언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과 특히 납치자 가족들은 김현희씨에게 감사하고 있다. 김현희씨는 작년에 知人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을 만나고싶다는 뜻을 표현하였고 이것이 일본에서 보도되자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면담을 요청하였다. 좌파정권 시절이면 어림도 없었을 터인
자칭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2일 용산사태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전쟁위기를 불러일으켰다면, 금강산에 온 관광객을 사살하고, 일방적으로 남북간 약속을 파기하고, 잇따라 對南군사도발을 공언한 북한정권이 전쟁위기를 불러일으켰지, 왜 순해 빠진 李明博 정부에 남북관계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전쟁위기까지 불렀다고 덮어씌울까? 골수 친북좌익도 이런 생떼는 잘 쓰지 않는다. 李明博 정부가 그래도 가장 잘한 일은 對北굴종과 퍼주기를 거부함으로써 학살정권에 뜯어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신부들에겐 민족분열의 죄로 보인다. 김정일이 민족공멸의 핵실험을 하였을 때 金에 대하여 민족분열의 죄라고 비판하지 못하였던 신부들이 순해 빠진 자기들의 대통령을 향하여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데 이런 신부들로부터는 증오심과 편협한 마음만 느껴진다. 이들의 거짓과 선동엔 역사가 있다. 이 신부들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盧泰愚 후보가 당선되자 선관위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개표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했다. 김대중 후보 세력이 이 억지에 가세하여 컴퓨터 부정설이 세상을 흔들었다. 광우병 선동의 元祖격이다. 나는 그 후 김대중
어제 북한당국이 그동안 남북한 사이에 맺어진 모든 정치, 군사적 합의를 무효라고 선언한 것과 관련하여 6.15 선언, 10.4 선언 등 중요합의의 당사자였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1. 두 사람은 북한정권이 이런 식으로 일방적 파기를 할 때를 대비하여 어떤 응징조항이 합의문에 들어있는지 밝혀야 한다. 모든 합의엔 어기는 측에 대한 벌칙이나 응징, 그리고 피해당사자에 대한 보상 조항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는 남북간 합의는 상대의 善意에만 기대하는 엉터리 계약이다. 엉터리 계약서를 만들어 국가에 손해를 끼친 자는 依法처리해야 한다. 2.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간의 경색이 李明博 대통령 책임이라 주장해왔다. 북한당국도 합의를 깨는 이유에 대하여 李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金 전 대통령도 같은 생각인지 국민들에게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3. 나 같은 많은 국민들은,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은 노벨상에 집착한 김대중측이 김정일에게 5억 달러의 금품을 주고 매수한 것으로 본다. 그런 회담에서 나온 6.15 선언은 애시당초부터 사기적 숫법에 의한 문서이므로 원인무효였다. 6.15 선언에 담은 약속들도 김정일
1912년 4월14일 밤 세계최대의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중 대서양에서 氷山과 충돌, 15일 이른 새벽에 침몰하였을 때 2223명이 타고 있었다. 31.8%인 706명만이 살아남고 1178명이 사망하였다. 여자승객의 74%, 어린이의 52%가 살아남았는 데 반하여 남자승객의 20%만이 구조되었다. 여자와 어린이 우선(Women and children first)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알려진 것은 1852년 영국 군함 빌켄헤드호가 침몰할 때 수병들이 모범을 보인 이후이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 이 원칙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한 선원들이 救命보트에 빈 자리가 있음에도 남자를 태우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타이타닉에 준비된 구명보트는 1178명을 태울 수 있었는데, 706명만이 구조된 것은, 다 태우지 않고 출발한 보트가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일부 승객들은 큰 배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1등석에 있던 일곱 어린이들중 여섯 명, 2등석의 어린이들 전부가 구조되었으나 3등석의 어린이들중 34%만이 구조되었다. 영국 남자 승객들의 사망률이 미국남자들보다 훨신 높은 것은 紳士道를 실천한다고 救命보트에 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이 지구상의 민주국가들중 전직 대통령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국민갈등을 선동하는 예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진정한 민주투사라면 그런 선동은 북한주민들을 향하여 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정권을 상대로 싸우라고. 2000년 6월 김정일-김대중 회담 이후 그는 숨겨온 자신의 이념적 正體性을 드러냈다. 광복 직후 그는 목포에서 좌익활동가로 일했다. 반공검사 鮮宇宗源씨의 증언에 의하면 김대중씨는 전향 공산주의자들 단체인 보도연맹의 간부였다고 한다. 1946년부터 그는 전향하였다고 주장한다. 2000년 6월 김정일을 만난 이후 김대중씨는 이 민족반역자에 굴종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전향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5억 달러의 뇌물을 받고 약점을 잡은 김정일은 김대중씨에게 對南적화전략문서인 6.15 선언을 들이대었고, 김대중씨는 反헌법 문서에 서명하였다. 그 이후 좌익들은 6.15 선언을 일종의 반역면허증으로 사용,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자가 학살정권의 핵무기 개발을 비호하였으니, 그의 도덕적 타락은 끝을 모른다. 우파정권이 들어서자 그는 선동꾼으로 돌변하여 촛불난동을 직접 민주주의라고 고무 찬양하였다. 북한군의 남